잔상[궁금합니까?]

소개 - 2010.09.05

losenvex 2012. 2. 17. 03:29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알기 위해 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이름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는 사람이다.] <영원한 화자> - 김애란

 

 

나도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공대생이란 꼬리표를 달고 봄만 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사람이다. 나는 스스로 이성적이길 바라는 사람이지만, 능력부족으로 감상에 빠져 시험 따윈 버리고 경주로 자전거 타러가는 사람, 강해지려 노력하지만 좋지 못한 평점에 쉽게 좌절하는 사람이다. 나는 완벽해지기 위해 늘 스스로 채찍질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방학이 지나고 새 학기가 돌아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멍청한 만큼 규칙적인 사람이다.

 

 

나는 읽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소설을 사고, 웹상에서 유머를 읽고, 좋은 글이라면 생각이 달라 평소에 적대하는 신문까지도 들춰보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웬일인지 전공책은 베게로, 논문은 이면지로 쓰는 사람이다. 날씨 좋은 날엔 분야에 상관없이 들고나가 어두워질 때까지 풀밭에서 노는 사람, 아이쇼핑하러 서점가는 사람, 헌책방에서 데이트 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도 읽고 싶은 사람이다. 당신의 몸짓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 꼰 다리의 방향을 확인하는 사람, 손짓의 궤적을 따라가는 사람, 당신의 눈을 마주보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나도 읽힐까 부끄러워 눈을 떨구고 마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가혹히 대하는 것, 풀어주는 것, 타협하는 것이다. 내게 나는 물어보고 들어주고 충고해주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차마 거울을 마주할 수 없어서 나를 상상하고야 마는 사람, 누군가 내 자신의 복제가 있다면 스스로를 안아주고 싶다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를 들여다보는 사람, 마음 살짝 들춰보고는 감춰둔 것에 지레 놀라 다시 덮어두고 도망치는 사람. 종래엔 다시 살금살금 돌아오고야 마는 사람이다.

 

 

나는 쓰기도 좋아하지만 어떻게 읽힐지 두려워 다시 지우고 마는 사람, 결국 주체 못하고 다시 써내려가는 사람이다. 몇 번을 고쳐 쓴 글이 맘에 들어 다시 읽고 나면 누군가가 이미 써놓은 글과 비슷한 마음에 또다시 우울해지는 사람, 하는 수없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상투적 표현으로 위안 삼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 흉내는 왜 늘 불임일까 궁금해 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완성한 글에 만족하는 사람,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의 느낌도, 생각도 알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나는 너무 쉽게 들뜨는 심장 때문에 매번 불편한 사람, 그러다 진짜 가슴 뛸 일에 오히려 가라앉아 혼란스러운 사람, 그럴 때마다 '이성'으로 두근거림을 조절할 순 없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나는 외모를 따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당신의 아이쉐도우, 당신의 뒷모습에 반하고 마는 원시인, 짐승, 남자, 사람이다. 나는 헤픈 사랑이다.

 

 

나는 생각하는, 나를 읽고 쓰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글이 [관심 없는 이성의 고백처럼 조금씩 지루해]지기 전에 마무리하려는 사람, 하지만 사실은 잠도 오고 더 쓰기 부끄러워서 그만두려는 사람, 올리기엔 쪽팔리지만 차차 나아지겠지라고 다시 다짐하는 사람이다. ‘이게 뭐야’라고 생각하는 당신께 그저 미안한 사람, 날 ‘이상한 사람’으로 봐주는 당신께 고마운 사람, ‘뭐 괜찮네.’라고 동정해주는 당신이 미운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이것저것 긁어모으지만 당신이 언제쯤 충분해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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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올리면 후회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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