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읽고적는글]

<현대 건축을 바꾼 두 거장>, 천장환

losenvex 2014. 6. 13. 00:05

[어떤 면에서는 절대 자라지 않는 평생 소년이었다.]

이처럼 라이트의 주택은 때로는 그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분신과도 같았다. 건축주는 라이트가 설계한 집에 들어가 사는 그 순간부터 라이트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 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그런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라이트의 위대한 장점과 단점은 모두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또는 무책임함)에서 나왔다. 그는 책임에서 도망가는 데 익숙한 어린애처럼, 다른 사람의 돈으로 즐기고 나서 빚 갚을 걱정은 나중에 했다.

그는 너무 많이 썼다.

라이트는 "위대한 건축은 대지와 굳건히 결합하여 그 주변 환경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다른 곳에 옮겨 지어질 수 없다."고 했는데 텔리에신이 바로 그랬다.

라이트는 음악을 사랑했고 실습생들에게는 요리, 청소, 농장 일, 연극 공연, 시 낭송 등이 설계실에서 앉아 일하는 것만큼 중요했다.

허버트 존슨: 프랭크! 비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지네!
라이트: 양동이를 받쳐 놓으세요.

이처럼 라이트의 빌딩들에는 비가 새는 지붕이라든지, 처지는 캔딜레버, 작동하지 않는 환기 시스템, 찬 바람이 들이치는 창문들, 빌딩을 차갑게 하는 난방기구 등 수많은 실패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문제점들은 오히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관해 중요한 점을 말해 준다. 결과적으로 그가 주로 관심이 있엇던 것은 실제 빌딩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이상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의 재료로 성취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에 도달하기 위해 그는 기꺼이 실패를 감수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라이트의 건축주들조차 그러한 실패에 동참하고자 했다.

솔로몬 구겐하임은 라이트의 건축 디자인을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였지만, 비구상 회화들을 전시할 미술관은 기존과는 완전히 다르고 새로운 공간이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그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라이트가 제시한 이러한 공간 개념은 나중에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술관 내부가 여러 다양한 전시에 너무도 잘 이용되는 것으로 증명되었지만, 이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완성되고도 한참 뒤의 일이다. 

장례식 날, 유니티 교회의 목사는 라이트가 가장 좋아하던 에머슨의 글 한 구절을 읽었다. "남자가 되려면 체제에 순응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내적 존엄성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

사회자: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십니까?
라이트: 전혀요. 죽음은 위대한 친구죠.
사회자: 선생님은 개인적 불멸을 믿나요?
라이트: 네. 나는 지금까지 불멸이었고 앞으로도 불멸일 겁니다. 나에게 '젊음'은 의미가 없습니다. 젊다는 사실만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젊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당신 자신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다면 당신의 존재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관 속에 들어갈 때조차 당신은 불멸이 것입니다. 

- <현대 건축을 바꾼 두 거장(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편)>, 천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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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미스 반 데 로어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