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전해졌기를]

[20060607] 연애

losenvex 2012. 3. 2. 03:17

오늘 여친의 친구과 대화를 했다.
우리의 관계를 유일하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

진단에 나섰고,
상담결과 병명은 '무모한 헌신'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살고있냐는 소리를 들었다.
뭐하러 그렇게 착하게 살려고 하냐고......

나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질문에 그저....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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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혀 두었던 내 얘기를 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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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뭐하러 밝혀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답답한 마음에 적어본다.

그녀는 빠른 86년 생이다.
그리고 재수를 하고 명지대에 들어가서 작년에 반수를 실패했다.
즉, 고등학교는 나보다 먼저 갔지만 대학은 내가 먼저 왔다.
다음 학기 복학이기 때문에 지금은 놀고 있다.
일본어를 잘해서 일문어과를 갔지만, 아직 뭘 하려하는지 결정하지 못했다.
나와서 집세 월 10만원씩을 내면서 친구와 자취중이다.
집. 넉넉하지 못하다. 용돈은 받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다.
어학을 좋아해서 월 15만원 스페인어 학원을 다니고 있다.

문제는 지금 스스로의 벌이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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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에게 나는 무엇일까.

내 벌이는 다음과 같다.
학기당 장학금 150만원과 월 35만원의 과외를 하고 있다.
필요시에는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도 한다. (안그러려고 노력하지만.....말이다.)
이러한 돈들은 생활비로도 쓰이지만 연애자금으로도 쓰인다.

......생활비는 나와 그녀가 같이 쓰는 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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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는 사람은 알지도 모르겠지만,
장거리연애를 하기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이동에만 쓰이는 돈도 엄청날 뿐 아니라 밥먹는 것도, 자는 것도 계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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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체크카드이긴 하지만 내겐 두개의 카드가 있다.
하나는 학생증이고, 하나는 그녀에게 있다.
그녀는 생활비를 쓰며,
집세를 내고,
핸드폰 요금을 내며,
학원비를 낸다.
그리고 가끔 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포항에 온다.
학기초 200만원 가까이 남아있던 통장의 잔고는 어느새 1/100이 되어있다.

물론 사랑은 돈으로 가치지어 지는 것이 아니지만,
돈이 뒷받침 되지 않는 사랑은 유지하기 힘들다.

그녀는 매번 갚는다고 당당히 말한다.
나도 그녀가 갚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젠 내가 기다리다 지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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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랑을 할 때는 무조건적인 신뢰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녀는 언젠가 자신의 길을 찾을 것이고,
안정된 수입과 안정된 생활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기다려보기로 했다.

명지대를 다니던 중, 편입을 하겠다는 말에 힘내라고 다독였다.
작년, 수능을 다시 보겠다는 말에 화가 났지만 참았다.
자취를 하겠다는 말에 도와주겠다고 다짐했다.
장학금을 받아 일본으로 유학을 가겠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웃어주었다.
인터넷을 이용한 장사를 하겠다는 말에 같이 아이템을 고민해주고,
장사를 위한 밑천을 먼저 모으자고 설득했다.
알바를 두달하고는 돈이 모이지 않는다며 점원이나 직원을 하겠다고 하자,
좋은 자리 잘 찾아서 안정된 수입을 얻으라고 격려했다.


그 후 한달이 지났다.


그녀는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했고,
내 통장의 잔고는 이미 바닦이 드러났다.

나는 어찌 할 바를 모르겠고,
그녀는 힘들다고 난리다.


혼란스럽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것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어른의 사랑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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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는 내가 여자의 마음을 모른다고 가슴아파한다.
틈틈히 전화해서 잘 지냈냐고,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냐고 물어봐 주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리 급하기 힘든일이 있어도,
자신이 전화하면 모두 제끼고 들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돈 따위는 안해줘도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것은 싫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래주지 못했다.

나는 이미 대학교 3학년이며,
이제 학점을 신경 쓸 때고,
방학 땐, 연구참여까지 해야한다.

....

3학년이 되어서는 더 많이 싸웠다.
방학만 기다렸는데 왜 올라오지 않는냐고 싸웠고,
YLC를 뭐하러 하냐고 싸웠다.
전화 안해준다고 싸웠고,
전화하면서 자기는 그냥 들어주기만 했으면 좋겠는데 왜 그걸 못해주냐고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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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건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금 내가 하고있는 것은 무엇이고,
사랑한다면,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걸까.

모르겠다.

다른 누군가의 일에, 상황에, 연애에 그렇게 차가운 모습을 하면서도,
내 자신에게, 그녀에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결국은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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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약하다.
그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약한 사람임에도,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아이러니.

결국 참지 못하고,
내가 그녀를 다그칠 때마다 그녀는 운다.
나도 힘든데 너까지 나한테 그래야 하냐고 운다.
울고 있는 그녀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결국 내가 할일은 그녀를 안아주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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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그리 없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그녀에게 수많은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 버티는 것이다.

솔직히 그녀가 나 따위는 버리고 훨훨 날아가 줬으면 한다.
아니면 나보다 더 다정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그녀를 데려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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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내게 참 구질구질한 사랑을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내게 참 비굴하게 산다고 말한다.

3학년이나 되서 선배들 동기들 밥 얻어먹고,
제때 공부 안해서 사람들 숙제 베끼고 퀴즈 버리고,
시험기간에 반짝 공부하고 망하고,
동아리도, 분반도, 학과도, 챙기지 않으면서,
선배대접 받으려고 지랄하고.
.
.
.
나도 슈퍼맨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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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런 글을 쓴 이유는,
어제 대판 싸운 것도 있었지만,
기말고사가 코앞에 다가온 것도 있지만,
이젠 통장의 잔고가 바닦이 나기도 했지만,

결국은 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제 과친구들 중에 몇몇이 내게 연애상담을 요청했다.
일단은 알고 있는 것들을 이것저것 알려주기도 했지만,
대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내 할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상담이란 말인가.
갑자기 두려워졌다.
연애에 실패한 사람이 연애상담을 해주는 아이러니가 무서웠다.
나의 자신감이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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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록 흥분한 나머지 그녀를 너무 몰아간 느낌이 있다.
아마도 나는 나쁘지 않으려는 얄팍한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내 문제이며,
내가 자초한 것이고,
내가 해결해야 할 것이다.

얼마간의 유예기간이 있겠지만,
이젠 그만 헤어져야 할 것 같다.
더이상 나를 속이고 그녀도 속이고 살기는 힘들 것 같다.

이제 곧 그녀도 복학을 할 것이고,
취직자리를 구할 것이다.
내 통장의 잔고가 떨어진 만큼 그녀도 안정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역할도 끝날 것이며,
나도 쉴 수 있을꺼다.


             그래 나도 좀 쉬자.
             사랑은 할만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