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읽고적는글]

2017년 7월 30일· [내리막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losenvex 2019. 9. 9. 22:56

 

박별 (Bradley Park)이 사줘서 묵혀두던 책인데, 이제야 끝까지 읽음. 혹시나 읽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미리 얘기해두자면 읽어서 재미있을 만한 사람은 뭔가 커리어의 고점을 찍거나, 고점을 찍으면 뭘 해야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함. 반대로 얘기하면 연차낮은 직장인, 취준생, 백수, 학생 등등에게는 그닥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의 책. (그래서 나도 별 공감이 안되는 것 같기도)

책이 별로라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뭔가를 이룬 사람들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글 느낌이 들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상황과 현실이 반영이 잘 안된 것 같다. (개인적 판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훈이 있었기에 일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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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 사랑하면서도 거리두기'다. 일에 대한 필요한 거리는 연인 사이에 필요한 거리와 다르지 않다. 관계에 대해 흔히들 이렇게 얘기한다. "혼자서도 잘살 수 있는 사람이 둘이서도 잘살 수 있다"고. 그 사람이 아니면 죽을 것 같고, 그가 아니면 내 삶이 의미가 없고, 상대의 인정이 내 존재 가치를 규정한다고 믿어버린다면 그 연애는 결코 건강하게 오래 지속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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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말은 현실에서 너무 쉽게 허망해진다. "좋아서 하는 사람은 못당한다"."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말이 경구처럼 떠받들여지는 시대다. 동시에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두는 것이 좋다"는 말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실은 아마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문제는 대체 그 '좋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냐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대개가 그놈의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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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두어 개를 거치고 경력이 좀 붙자 나는 유들유들함의 가면을 집어 들었다. 빠득빠득 설득해서 원하는 것을 얻든지, 머리를 슬쩍 숙이고 웃음 한 번 흘려서 원하는 것을 얻든지,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우친 덕이었다. 아니, 오히려 후자 쪽이 훨씬 나은지도 몰랐다. 논쟁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면 상대의 마음엔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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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무라 야스유키는 이런 '평화공생지향' 젊은이들이 1990년대 후반 대거 시골로 이주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시골에서 그 대단하지도 않은 기대를 채울 만큼의 돈벌이조차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도시로 돌아와 울며 겨자 먹기로 경쟁의 대열에 다시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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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더 많은 '쓸데없는 일', 잉여짓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돈과 시장을 경유하지 않고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 쓸데없는 일이 늘 재미있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 그 쓸데없는 일도 역시 우리에게 좌절을 안기기도 하고 피로함을 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규정한 일에서만 우리는 그러한 좌절과 피로를 즐거움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일하는 자-됨'의 윤리란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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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요구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되,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스스로 변화를 집어넣으라는 것이다. 똑같은 일의 패턴을 따르는 대신 그때그때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보거나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해보는 식이다. 이렇게 현실의 일 위에 또 다른 층위를 스스로 창조해낼 때, 그리고 그 층위에 몰입할 수 있을 때 일은 몸값이라는 현실의 성과 기준과는 상관없이 작동하는 하나의 놀이가 된다.
놀이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제3자의 승인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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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마운틴에서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나 '원래 그런 것', '위에서 결정된 것' 같은 말 앞에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출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의 총구가 어디를 겨눌지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면 '시키는 대로 했다'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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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실은 정확히 그 반대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명함을 주고받는 것이 어른들의 교제법이다. 명함을 내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어디서 무슨일을 하는지 둘러서라도 집요하게 물을 것이다. 그 답을 알고나서야 그들은 머리속 지도에 당신을 위치시키고 마음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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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달인>) 성실한 노력을 쏟아붇고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만은 장인답지만 그들이 놓인 조건은 그렇지 못하다. 달인들이 일하는 곳은 그들 자신의 공방이 아니라 기업이 운영하는 공장이나 대형 상업시설이다. 그들의 작업물은 철저히 익명의 것으로, 기업의 상표가 분을 뿐이다.
그들의 일은 자기 자신의 리듬이 아니라 기계의 리듬 또는 고객의 리듬에 따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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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소프트 인터뷰 발췌)
"신입 사원을 모시는 게 아니라 실제 능력이 있는 사람 아니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언어는 배우면 되고, 기술은 익히면 되고, 경험은 쌓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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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려면 등가성을 따지지 않고 내 존재의 의미를 발견해주는 일터에서 일해야 한다. 내 존재 자체를 일의 규정에 포함해주는 일터가 필요하다. 그런 일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없다면 우리 스스로 '무리'를 이루어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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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일이란 대개 먹고살기 위한 돈벌이다. 일은 괴로운 것이 자연스러우며, 그래야 우리에게는 대가를 받을 자격이 생겨난다. 우치다 타츠루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통찰을 내놓는다. "사냥꾼인 아버지가 사냥한 짐승을 들고 집으로 들어오듯, 농부인 아버지가 곡식과 채소를 집으로 가지고 오듯, 현대의 샐러리맨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언짢은 얼굴을 가지고 돌아옴으로써" 가족을 위한 노고와 희생을 과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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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해도 되는데 같이할 사람들을 구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아주 단순한 답이 돌아온다. "혼자 못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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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다르게 살고자 한다면 결국 더 유능해야 한다. 이것이 흔한 자기 계발서의 주문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다만 유능의 준거가 세상의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유능해야 할 이유가 온전히 나의 것이어야 한다. '남들만큼'이 아니라 '나름대로' 먹고살며, 시장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면서 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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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 오늘이 어디서 왔건, 그것을 뚫고 지나야 하는 것은 오롯이 '나' 그리고 '당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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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인 목표를 계획하고자 하는 사람, 일을 잘해 잘하는 일을 해왔는데 이제는 재밌는 일이 뭘까 고민하는 사람, 베테랑이라고 하기엔 확신이 들지 않는 말년 병장(Sergeant)에게 이 책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