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대하는 방법
20041193 김태형
‘모든 사람은 각자의 고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비약일까?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난 후의 주제를 고통으로 잡고 나니 필요한 전제에 대해서 확신을 하기 어렵다. 너무 당연해서일까? 아무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고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때문에 그 고통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삶도 다른 방식을 띄는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라는 소설을 통해 개인이 고통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와 그 변화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을 접하면서 겪는 일들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1. 짧은 시간에 척척
그는 불면의 밤을 겪으며 고통이 없는 곤충들에 대해서 부러워한다. 매일 밤 코끼리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는 고통은 다시 불면을 부르고 그 불면이 다시 고통이 되는 거대한 순환 고리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잠이 올 때까지 걱정하는 일들의 목록을 적어 내려가는 것뿐이었다. 여기서의 나는 고통을 일차적으로 피하는 형태를 취한다. 코끼리의 등장을 피해 정신을 다른 곳에 집중하려 ‘걱정하는 일들’을 적어 내려간다던지 혹은 잠이 올만한 지루한 책을 골라서 읽는 등의 행위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다 우연인지 (혹은 필연인지) “암환자를 위한 생존전략”이라는 책을 통해, 의사와 대화하는 암환자를 위한 테크닉인 ‘거울 기법’과 숙면을 돕는 ‘산책’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2. 코끼리도 재울 수 있으며
여기서 그는 새로운 방법(산책)을 통해서 고통을 잊어보려 하지만 혼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결국 여동생과 함께 산책에 나서지만 단순히 자신의 고통을 피하기만을 위해 여동생을 필요로 했고, 때문에 자신의 고통에 대한 대화가 이뤄지지 못했기에 코끼리를 피하는 것은 실패로 돌아간다. 물론 산책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로 오랜만에 수면을 취할 수는 있었지만, 그 역시도 오래가지 못하고 도중에 잠에서 깨고 만다.
여기서 그는 다시 “암환자의 생존 전략”을 읽게 되고 통증을 공으로 치환하는 방법을 통해 고통을 외면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고통을 스스로 다룰 수 있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이는 고통을 다루는 방법에 그치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의 크기만을 확인 할 뿐, 역시 그 고통을 인정 혹은 극복하는 것에는 실패한다.
3. 침대에서는 잠만 자고 섹스만 하고
[다음 날, 그는 걱정하는 일들의 목록이 적힌 A4용지를 뒤집어 거기에다가 친구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다.] 드디어 그는 자신의 고통을 혼자서 해결하는 방법에서 타인과 함께 고통을 극복하려는 과정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만난 친구와의 대화에서 드디어 나는 내 고통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말하기 시작하지만, 외상후증후군 대화를 통해 내 고통을 타인이 헤아리기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산책’과 ‘거울 기법’을 통해 타인과 소통을 시작한다는 점이다.) 다행인 것은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타인에게도 고통이 존재하며, (물론 백혈구 정도의 크기지만,) 고통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내 고통이 나에게는 지구와 같더라고 그것이 타인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점([“고통, 아아, 그 고통.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는.”])과 고통의 근원인 코끼리가 사실은 [있다고 생각하는 하지만 증명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나는 드디어 고통을 인정하게 된다. 더불어 그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것도 울어버리는 것도 거부하지 않는다. 꺼이꺼이. 코끼리가 심장을 밟아서 아픈 건지, 이해하지 못했던 그녀를 생각하느라 슬픈 건지도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그렇게 꺼이꺼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러기들처럼.]
4. 결국 혼자서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며
아홉 명의 친구들을 만나서 고통을 확인하고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더라도 그것이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이 되지는 못한다. 서로에게 고통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고통의 존재를 인정하게 해주지만 이를 극복하는 것은 결국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불편했던 건축사 친구를 떠나보내고, 또다시 등장한 코끼리를 향해 그는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디뎌] 본다. 드디어 코끼리를 이해하려는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극심한 고통과 종래엔 그녀처럼 죽을 것이라는 공포까지 겪게 된다. 하지만 비를 맞으며, 하늘을 바라보며, 코끼리와 대화하며, 고통이란 것도 결국은 자신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닌 수용하는 것이 진정으로 고통을 극복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그가 붙잡지 못했던 그녀, 이제는 죽어버린 그녀가 코끼리의 모습으로 그에게 고통을 준 것은 아니었을까.)
5. 거리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될 것이다
이제 그는 코끼리와 함께 생활한다. 도망치지도, 외면하지도 않으면서. 물론 그 코끼리가 언제다시 고통을 줄지는 모르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고 도망친다고 달라질 일도 아님을 알기에…….
내 고통을 이해해 줄 친구가 아닌 [한 번이라도 안면이 있거나 혹은 다시 일을 시작하려면 어차피 만나야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는 다른 이들도 나름대로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매머드든 오랑우탄이든 상관없이. 그러다 “암환자를 위한 생존전략”을 쓴 Y씨를 만나게 된다.
“그렇죠. 언제라도 나는 죽을 수 있다는 공포.119 구급차가 이 고궁 안쪽까지 들어와서 바닥에 쓰러진 나를 태우고 가는 환상. 구급차가 들어온다면 과연 어디로 들어올까? 심지어는 그런 것도 궁금해서 관리사무소에 문의한 적도 있어요.”
그리고 Y씨는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서 Y씨는 고통의 근원이 심리적인 나와 달리 ‘암’이라는 육체적인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그 고통을 스스로의 의지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나와 유사한 혹은 나보다 앞선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위의 인용을 보면 그러한 면을 확인할 수 있는데, 죽을 수 있는 공포를 말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녀는 이미 고통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Y씨와 대화를 하면서 나는 사람들과 함께 산책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그 고통의 근원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상관없이, 오랑우탄이든 매머드든 코끼리든 상관없이, 누구나 고통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의 고통을 이해할수록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이나마 더 알아갈 수 있기에, 종래엔 모두가 고통을 웃으면서 받아들이기 위해서…….
'감상[읽고적는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What Women Want] - 2011.07.20 (0) | 2012.02.17 |
---|---|
[Orlando] - 2011.07.10 (0) | 2012.02.17 |
<타인에게 말 걸기>, 은희경 - 2010.12.11 (0) | 2012.02.17 |
<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 2010.11.30 (0) | 2012.02.17 |
<낮과 꿈>, 강석경 - 2010.11.17 (0) | 2012.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