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읽고적는글]2012. 2. 17. 03:59

달려라, 아비

20041193 김태형

 

모든 자녀들은 달린다, 아버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그럼에도 그들이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다 다를 것이다. 아버지를 찾으러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사람, 아버지를 따라잡기 위해선 얼마나 뛰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 아버지에게 다가가고자 일단은 자신의 길을 빠르게 달려 좀 더 좋은 방법을 알아보려 하는 사람……. 그들의 아버지는 그들이 자신에게 오려고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그저 바라보고 기다려야 한다고 믿고 있을 따름이다.

 

당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에 비해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 아버지가 미울 수도, 그리울 수도 있다. 왜 저기서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만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다 당신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가가던지, 아니면 외면하던지. 다가가는 길은 좀처럼 쉽지 않다. 이해하기 위해 대화를 하려해도 반응은 차갑고, 어딘가 딱딱하게 굳어가는 그들의 마음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당신은 지쳐간다.

 

세월을 흘려보내며 다들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된다. 이제 당신은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이해하려 했다는 사실조차 잊고선 살고 있다. 그만큼 당신은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당신은 당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행동, 말들을 당신의 자녀에게 같은 방식으로 전하려 한다. 그렇게 당신은 서서히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동시에 당신은 갈등에 빠진다. 당신의 아버지처럼 자녀를 대할 것인가, 그와는 다르게 자녀를 이해하려 할 것인가.

 

물론 당신은 아버지와 다르게 내 아이를 이해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노력과 다르게 아이들은 자꾸 힘겨워하기 마련이다. 노력은 참견이 되고, 관심이 불편함을 안겨주며 당신과 자녀는 멀어지고 당신은 이제 완벽히 당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에게 무심하지 않았다. 다만, 그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자녀가 당신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다.

 

소설, 혹은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서는 끊임없이 달리는 아버지에 대해서 말한다. 달리는 이유도, 달리는 위치도, 어디로 가려는지 목적지도 알지 못한 채 나의 상상 속에서 아버지는 달리고 있다. 그렇게 달리던 아버지는 한 장의 편지에 도착해 나에게 배달된다. 편지에 담긴 아버지는 상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있었다.’

 

그녀의 상상속의 아버지는 왜 달리고 있었을까? 아버지는 어디로 가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달리고 달리던 아버지가 전 세계를 돌고 돌아 내게 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을까? 돌고 돌아 편지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썬글라스를 씌워준 그녀는 이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언제나 아버지를 기다리며 자랐던 저는,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유품에서 찾아내 당신들의 주소 앞으로 어머니 모르게 편지를 보냅니다.’

Posted by losenvex
잔상[궁금합니까?]2012. 2. 17. 03:29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알기 위해 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이름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는 사람이다.] <영원한 화자> - 김애란

 

 

나도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공대생이란 꼬리표를 달고 봄만 되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사람이다. 나는 스스로 이성적이길 바라는 사람이지만, 능력부족으로 감상에 빠져 시험 따윈 버리고 경주로 자전거 타러가는 사람, 강해지려 노력하지만 좋지 못한 평점에 쉽게 좌절하는 사람이다. 나는 완벽해지기 위해 늘 스스로 채찍질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방학이 지나고 새 학기가 돌아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멍청한 만큼 규칙적인 사람이다.

 

 

나는 읽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소설을 사고, 웹상에서 유머를 읽고, 좋은 글이라면 생각이 달라 평소에 적대하는 신문까지도 들춰보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웬일인지 전공책은 베게로, 논문은 이면지로 쓰는 사람이다. 날씨 좋은 날엔 분야에 상관없이 들고나가 어두워질 때까지 풀밭에서 노는 사람, 아이쇼핑하러 서점가는 사람, 헌책방에서 데이트 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도 읽고 싶은 사람이다. 당신의 몸짓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 꼰 다리의 방향을 확인하는 사람, 손짓의 궤적을 따라가는 사람, 당신의 눈을 마주보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나도 읽힐까 부끄러워 눈을 떨구고 마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가혹히 대하는 것, 풀어주는 것, 타협하는 것이다. 내게 나는 물어보고 들어주고 충고해주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차마 거울을 마주할 수 없어서 나를 상상하고야 마는 사람, 누군가 내 자신의 복제가 있다면 스스로를 안아주고 싶다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를 들여다보는 사람, 마음 살짝 들춰보고는 감춰둔 것에 지레 놀라 다시 덮어두고 도망치는 사람. 종래엔 다시 살금살금 돌아오고야 마는 사람이다.

 

 

나는 쓰기도 좋아하지만 어떻게 읽힐지 두려워 다시 지우고 마는 사람, 결국 주체 못하고 다시 써내려가는 사람이다. 몇 번을 고쳐 쓴 글이 맘에 들어 다시 읽고 나면 누군가가 이미 써놓은 글과 비슷한 마음에 또다시 우울해지는 사람, 하는 수없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상투적 표현으로 위안 삼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 흉내는 왜 늘 불임일까 궁금해 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완성한 글에 만족하는 사람,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의 느낌도, 생각도 알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나는 너무 쉽게 들뜨는 심장 때문에 매번 불편한 사람, 그러다 진짜 가슴 뛸 일에 오히려 가라앉아 혼란스러운 사람, 그럴 때마다 '이성'으로 두근거림을 조절할 순 없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나는 외모를 따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당신의 아이쉐도우, 당신의 뒷모습에 반하고 마는 원시인, 짐승, 남자, 사람이다. 나는 헤픈 사랑이다.

 

 

나는 생각하는, 나를 읽고 쓰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글이 [관심 없는 이성의 고백처럼 조금씩 지루해]지기 전에 마무리하려는 사람, 하지만 사실은 잠도 오고 더 쓰기 부끄러워서 그만두려는 사람, 올리기엔 쪽팔리지만 차차 나아지겠지라고 다시 다짐하는 사람이다. ‘이게 뭐야’라고 생각하는 당신께 그저 미안한 사람, 날 ‘이상한 사람’으로 봐주는 당신께 고마운 사람, ‘뭐 괜찮네.’라고 동정해주는 당신이 미운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이것저것 긁어모으지만 당신이 언제쯤 충분해할지 모른다.]

 

 

-----------------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올리면 후회하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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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osenvex
감상[읽고적는글]2012. 2. 14. 00:48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인터넷 대화창 앞에서 오줌보를 붙든 채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자꾸만 박살나고 있는 햇빛 바깥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 가는 길이었어? 어디 가는 길이었던가? 그렇
    지, 나는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지.
 
 

-------. 나는 스스로 조금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래서 내 앞사람이나 옆사람도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불쾌해지는 사람이다.
 
 

그리고 어느날,

당신은 너와 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자주 상상한다. 나는 나에
게서 당신만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내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나를 상상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상상하는 사람, 그
러나 그것이 내 모습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상상을 
빌려오는 사람이다.
 
Posted by losenvex
감상[읽고적는글]2012. 2. 13. 14:01
  "복어에는 말이다."
  아버지가 입술에 침을 묻혔다.
  "사람을 죽이는 독이 들어 있다."
  "........"
  "그 독은 굉장히 무서운데 가열하거나 햇볕을 쬐도 없어지
  지 않는다. 그래서 복어를 먹으면 짧게는 몇초, 길게는 하루
  만에 죽을 수 있다."
  나는 후식으로 나온 야쿠르트 꽁무니를 빨며 아버지를 멀뚱 
쳐다봤다.
  "그래서요?"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오늘밤 자면 안된다. 자면 죽는다."
  "뭐라고요?"
  "죽는다고."
  나는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버지는요?"
  "나는 어른이라 괜찮다."

 
 아버지는 두툼하고 부드러운 솔에 거품을 묻힌 다음, 내 뒷덜미에 담뿍 발랐다. 간지러운 느낌 때문에 고추 끝이 찡했다.

 
  "어머."
  아버지가 말했다.
  "그게 네 엄마가 내게 건넨 첫마디였지."
  자신감을 얻은 아버지는 다소 과감하게, 마싸지의 범위를 
넓혀간다. 그러나 손끝은 여전히 바들거린다. 아버지의 손이
지나는 곳마다 여자의 가려움과 붓기는 사라진다. 여자는 계
속 감탄하며 외쳐댄다. 어머, 어머.
 
  "그날 이후로 당신이 보고 싶을 때마다......온몸이 가려워 
지곤 했어요."

 
고요함. 그리고 오래도록 기다려온 입맞춤. 말캉 두사람의 입술이 겹친다. 순간 아버지의 머리 위로 수천개의 비눗방울들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나풀나풀. 우주로 방사되는 아버지의 꿈. 그리하여 투명한 비눗방울들이 낮꿈처럼흩나렸을 때. 싱그러운 비놀리아 향기가 밤하늘 위로 톡톡 파랗게 퍼져갔을 때.
  "바로 그때 네가 태어난 거다."
  나는 마구 콩닥이는 가슴을 안고 소리쳤다.
  "정말요?"
  아버지가 담담하게 말했다.
  "거짓말이다."
Posted by losenv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