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20041193 김태형
모든 자녀들은 달린다, 아버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그럼에도 그들이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다 다를 것이다. 아버지를 찾으러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사람, 아버지를 따라잡기 위해선 얼마나 뛰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 아버지에게 다가가고자 일단은 자신의 길을 빠르게 달려 좀 더 좋은 방법을 알아보려 하는 사람……. 그들의 아버지는 그들이 자신에게 오려고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그저 바라보고 기다려야 한다고 믿고 있을 따름이다.
당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에 비해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고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 아버지가 미울 수도, 그리울 수도 있다. 왜 저기서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만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다 당신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가가던지, 아니면 외면하던지. 다가가는 길은 좀처럼 쉽지 않다. 이해하기 위해 대화를 하려해도 반응은 차갑고, 어딘가 딱딱하게 굳어가는 그들의 마음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당신은 지쳐간다.
세월을 흘려보내며 다들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된다. 이제 당신은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이해하려 했다는 사실조차 잊고선 살고 있다. 그만큼 당신은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당신은 당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행동, 말들을 당신의 자녀에게 같은 방식으로 전하려 한다. 그렇게 당신은 서서히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동시에 당신은 갈등에 빠진다. 당신의 아버지처럼 자녀를 대할 것인가, 그와는 다르게 자녀를 이해하려 할 것인가.
물론 당신은 아버지와 다르게 내 아이를 이해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노력과 다르게 아이들은 자꾸 힘겨워하기 마련이다. 노력은 참견이 되고, 관심이 불편함을 안겨주며 당신과 자녀는 멀어지고 당신은 이제 완벽히 당신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에게 무심하지 않았다. 다만, 그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자녀가 당신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다.
소설, 혹은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서는 끊임없이 달리는 아버지에 대해서 말한다. 달리는 이유도, 달리는 위치도, 어디로 가려는지 목적지도 알지 못한 채 나의 상상 속에서 아버지는 달리고 있다. 그렇게 달리던 아버지는 한 장의 편지에 도착해 나에게 배달된다. 편지에 담긴 아버지는 상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있었다.’
그녀의 상상속의 아버지는 왜 달리고 있었을까? 아버지는 어디로 가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달리고 달리던 아버지가 전 세계를 돌고 돌아 내게 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을까? 돌고 돌아 편지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썬글라스를 씌워준 그녀는 이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언제나 아버지를 기다리며 자랐던 저는,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유품에서 찾아내 당신들의 주소 앞으로 어머니 모르게 편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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