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읽고적는글]2012. 2. 17. 04:06

소년은 울지 않는다.

20041193 김태형

 

김영랑님의 시구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정미경의 소설을 추천한다. 그녀의 소설은 너무 차갑고 아름다워 읽다보면 마치 해변의 모래알을 씹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너무 슬퍼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소설속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심히 그 슬픔을 받아들인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희망도, 행복도 아닌 슬픔임을 가르쳐주듯이. 그리고 그만큼 담담하게 슬픔과 동행한다. 때때로 소설을 읽고 나면 그들과 비교하여 위안을 얻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래도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내가 이 정도는 아니니까,

내가 겪는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소년은 울지 않는다>는 한 4인 가정을 소개하고 있다. 같은 학교 한 학생의 자살로 인해 ‘히키코모리’가 된 아들과 그 아들이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을지 되뇌는 엄마, 갑갑한 마음에 칼로 문을 찍고 소리를 지르면서 자신은 아들을 위한다고 생각하며 답답해하는 아빠, 그리고 그런 부모를 바라보며 서운해 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는 딸은 각자의 독백을 통해 서로를 말한다. [엄마-딸-아들-아빠-엄마-딸-엄마-아들]순으로 각기 다른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 소설에서, 그들은

...가족임에도 서로를 모르고, 가족이기에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징은 바로 ‘생각과 행동의 모순’이다. 의사인 자신의 일이 얼마나 괴롭고 힘겨운지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아들에게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걸으라는 아버지, 아들이 공부에 지치고 힘겨워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아들에게 신문의 사설을 읽히는 어머니, 그런 부모가 지겹고 원망스러우면서도 자신의 남자친구에게는 부모와 다를 바 없는 태도를 취하는 딸, 그리고 공부가 싫어 스스로 방에 가두었지만 게임을 하면서도 ‘잘’하려고 메모를 하는 아들까지,

...가족들은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그만큼 닮았다.

 

 

우리 어릴 때 엄마아빠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했잖아. 그래놓고는, 그렇게 길들여놓고는, 어느 날 갑자기 탁월하고 맹목적인 어떤 괴물로 변신하기를 기대하기 시작했어. 오빠는, 나는, 그 사랑이 끔찍하다, 엄마.

 

우리말에는 “애증”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는데, 어릴 때는 이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할 수 있을까? 어떻게 [끔찍하게 사랑을 쏟아 붓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아득한 꼭대기 위로 밀어대는] 걸까?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다행히 사랑도 하고 아프기도 했던 지금의 나는 그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만큼 미워할 수 있는 것이라고.

Posted by losenv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