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왜 그랬는지 몰라도, 내 속에서 그 무엇인가가 툭 터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목이 터지도록고함치기 시작했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신부복 깃을 켜잡았다.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채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마음속을 송두리째 쏟아버렸다.
너는 어지간히도 자신만만한 태도다. 그렇지 않고 뭐냐?
그러나 너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올 만한 가치도 없어.
너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데한 확신조차 너에게는 없지 않느냐?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자신에 대한, 모든것에 대한 확신. 너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일생과, 닥쳐 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언제나 또 옳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일은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너도 그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생애 전체에 걸쳐,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쳐서 내게로 불어 올라오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 더 실감날것 없는 세월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것은 모두 다 ,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너의 그 하느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 사람들이 선택하는 숙명,
그런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오직 하나의 숙명만이 나를 택하도록 되어 있고,
더불어 너처럼 나의 형제라고 하는
수 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도 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알아듣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을 가지고 있다.
특권을 가진 사람들 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선고 받을 것이다.
너 역시 사형 선고 받을 것이다.
네가 살인범으로 고발되었으면서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들 그
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살리마노의 개나 그의 마누라나 그 가치를 따지면 매한가지다.
자동인형 같은 그 작은 여자도, 마송과 결혼한 그 파리 여자나 마찬가지로,
또 나와 결혼을 하고 싶어하던 마리나 마찬가지로 죄인인 것이다.
셀레스트는 레몽보다 낫지만, 셀레스트나 마찬가지로
레몽도 나의 친구라고 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마리가 오늘 또 다른 사람의 뫼르소에게 입술을 내바치고 있은들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이 사형수야, 도대체 알기나 하느냐?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이런 모든 것을 외쳐대며, 나는 숨이 막혔다.
그러나 벌써 사람들이 사제를 내 손아귀에서 떼어내고 간수들이 나를 위협했다.
그러나 사제는 그들을 진정시키고, 잠시 묵묵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괴어 있었다.
그는 마침내 돌아서서 사라졌다.
그가 나가 버린 뒤에, 나의 마음은 다시 가라앉았다.
나는 기진맥진해서 침상 위에 몸을 던졌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눈을 뜨자
얼굴 위에 별이 보였기 때문이다.
들판의 소리들이 나에게까지 올라왔다.
밤 냄새, 흙 냄새, 소금 냄새가 관자놀이를 시원하게 해주었다.
잠든 그 여름의 그 희한한 평화가 밀물처럼 내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때 밤의 저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에게 영원히 관계가 없게 된 한 세계에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왜 인생이 다 끝나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생애를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뭇생명들이 꺼져 가는 그 양로원 근처 거기에서도,
저녁은 우수가 깃든 휴식 시간 같았었다.
그처럼 죽음 가까이에서 어머니는 해방감을 느꼈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마음이 내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무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준 것처럼,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밤을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닮아, 마침내는 형제 같음을 느끼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기 위해서,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써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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