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3:07

 

좋아해서 거의 전집을 사들였던 작가.
삶의 고발형 소설,
이제는 모두가 잊어버린 폭주족 십대, 가출 청소년의 이야기.
화자의 나이가 어린데, 작가의 표현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로 젊은 나이에 나름의 철학을 만든 것인지, 가끔 묵직한 대사가 있다.


중2병을 벗어나지 못한 어린 태도와 애어른에 도달한 대사와의 간극에 전반적으로 제이의 모습은 위태롭다.

[우리 같은 애들도 사람들은 전혀 못 봐요. 투명인간처럼 쓱, 지나가버리는 거죠. 좀 거북하고 불편하고 뭐 그럴 뿐이겠죠. 정 심하면 도려내면 되고.]

버려져 야생의 삶을 살게된 고양이들처럼, 섹스와 폭력의 삶을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2012년 作)

<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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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 내 손에 들려 있던 그 핏덩이는 어디로 갔을까? 앰뷸런스에서도 본 기억이 없았다. 그런데 그것, 그것을 뭐라고 하지, 그 물컹하고 축축한, 요란하게 소리내어 우는 작은 육신을? 정리되지 못한 어휘들이 그녀의 멍한 머리속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녔다. 하나의 단어가 수면 가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기, 아기 어딨어요?"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는 그녀를 젊은 인턴이 찍어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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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알고 있다. 세상 그 누구도 여섯 살의 내가 경험한 원초적 흥분을 재현해줄 수 없다는 것을. 지나간 기억은 외려 생생해지기만 하는데, 새로운 경험은 그에 터무니없이 미달한다는 것을 거듭하여 깨닫게 될 때, 인생은 시시해진다. 나는 너무 일찍 그것을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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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럴 거야?"
"잡을 때까지."
제이는 완강했다. 볼은 푹 패었고 내미는 팔에는 뼈만 남아 있었다. 반지하방의 문을 열고 내려갈 때마다 차갑게 굳은 제이의 시체를 발견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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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냥 적고보니 그저 평범한 크리스마스카드가 되어버렸다. 잘 있지, 나도 잘 있다. 거기는 좀 어떠냐? 메리 크리스마스다. 대충 이랬던 것 같은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제이로서는 누구 놀리나 싶은 기분이 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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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애가 하나도 없으면 여자애들은 가출을 실패하기 십상이다. 가출한 첫날, 늦어도 둘째 날까지는 지붕이 있는 잠자리를 구해야 한다. 잠자리를 제공해줄 남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선 예쁜 여자애가 필수다. 하나라도 있어야 거리의 가출시장에서 흥행이 되고 잠자리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다. 이들은 망설이는 예쁜이를 어르고 겁주어 결국은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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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그를 엎어놓고 모두 모여 등을 손바닥으로 두들겨대며 노래를 불렀다. 왜 태어났니, 씨발아, 왜 태어났니, 씨발아, 이 좆같은 세상에 왜 태어났니.
"언제까지 이렇게 사는 거야?"
여자애들이 돈을 벌러 나간 어느 저녁, 멍하니 앉아 TV를 보는 후드티에게 제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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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제이가 모노륨 바닥에 묻은 핏자국, 가해의 흔적을 닦을 때, 후드티가 지나가면서 말했다.
"찬물로 해. 피는 그렇게 닦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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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제이는 거리에서 열일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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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질문을 하고 있는 것뿐이야. 지난 일 년간 나는 나 자신한테 묻고 또 물었거든. 그게 어느새 버릇이 됐나봐. 내 고통의 이유는 무엇인가? 타인의 고통은 왜 나의 고통이 되는가? 신이 내게 이런 운명을 준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죽었어야 할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그것은 무슨 뜻일까? 이런 질문들을 하는 거야. 나는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돌아다녀. 조용한 곳을 찾아 책을 읽고 생각을 해. 그런데도 늘 시간이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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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지 마. 네가 이 우주의 중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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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의 독서는 아파트 재활용품 처리장에 나온 책들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므로 계통도 체계도 없었다. 자기계발서에서 건진 듯한 잠언이 종교적 교훈과 뒤섞였고 싸구려 대중소설의 잔뜩 힘을 준 비장한 문체가 로맨스의 극적인 구성으로 스며들었다. () 그가 내 삶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자 그의 말이 얼마나 텅 비어 있는지 문득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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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는 바다의 기이함을 단숨에 파악했다. 바다, 그것은 거대한 없음이었다. 제이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와 존재하지 않게 될 미래를 떠올렸다. 그 순간 제이가 느낀 감정은 공포에 가까웠다. 시작도 끈도 없는 우주의 시간이 바다라는 형태를 빌려 나타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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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밤의 세계에서 경찰은 호구였다. 순순히 딱지를 받아들던 낮의 아이들은 밤이 되면 피에 굶주린 좀비처럼 경찰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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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제이의 죽음을 상상하기 시작했을까. 아니, 이 질문은 비겁하다. 나는 언젠가부터 명백히 제이의 죽음을 상상해, 아니 바라왔던 것이다. 여러 번에 걸쳐 매우 구체적으로 나는 제이가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그려왔다. 그의 부재가 가져다줄 달콤한 비애의 맛까지도 어느 정도 예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더 나아가 나는 제이의 죽음에 가장 직접적인 관련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도 상정해보았다. 다시 말해 나는 살인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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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저 밤새 달렸다. 굼뜬 경찰을 피해 게릴라처럼 숨바꼭질을 벌였다. 정치적 비전이나 구호도 없었다. 요컨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매우 단순했다. 한밤의 퍼레이드. 그저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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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분위기상 천 대는 모이지 않을까?"
가스통의 예상이었다.
"와 씨바, 존나 떨린다."
흥분을 못 이겨 앞으로 치고 나가는 짝눈을 경광봉을 든 제이가 앞커버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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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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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주 듣는 말은 뭐니?"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예요."
"제이가 했던 말이지? 그런게 그게 무슨 뜻이야?"
"뜻은 모르겠어요. 그치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쩐지 제이가 저를 용서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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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야? 이 밤중에."
"아무 일도 없어."
"겪어서 안 될 일은 아예 격지 않는 게 좋다."
"뜬금없이 그게 뭔 소리야?"
"뭔 일인지 모르겠다만, 할까 말까 싶은 일은 그냥 안 하는 게 좋아."
"아무 일도 없대도 그러네. 제발 무슨 감 있는 척 좀 하지 마. 엄마는 그런 감 없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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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죄송해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돼요. 제가 다 알아서 해요."
제가 다 알아서 해요. 아직 솜털이 보송한 소년의 이 말에 갑자기 맥이 탁 풀려버린다. 윤리는 둑과 같다. 어느 정도까지는 자아를 지켜주지만 한번 터지면 격렬한 방류가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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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죽는다면 오늘은 오토바이를 탈 거예요."
목란이 씩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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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현실이 된대요"
제이가 담당하게 말했다.

Posted by losenvex
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3:06

 

 

Healing time in Winter.
"Some people are worth melting for"

 

Posted by losenvex
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3:04

 

그렇다면 처음부터 척했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고 고를 정말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다. 고도 그것만은 틀림없이 인정해주리라 생각하지만. 아무튼 그 인간은 돈이 너무 많고 그것에 꽁꽁 묶여서, 평판과 음모가 들끓는 그 집안과 어울리는 것은 나를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서른다섯의 내 몸, 빛이 나는 서른다섯, 너무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위스키를 마신 것처럼 나르시시즘을 마시고 만취해버린 건지도 모르지만, 고와 함께 있을 때는 그때가 인생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그 이전인 스물한두 살 때도 그랬지만- 지금 나는 지금이 내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혼자 사는 것이 쓸쓸해서 혼잣말이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즐거워서 혼잣말이 나온다.


혹은 혼잣말을 할 수 있는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 혼자 산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하라 코즈에는 둘이 살면 꽤나 상냥한 여자일 것이 틀림없다. 너무 오래 깊이 빠져 있으면 필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리란 걸, 너무 오래 머물다 결국 발을 뺄 수 없게 되면 큰일이란 걸 그 남자애도 알고 아마 두려워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싸울 거리도 없고, 헤어지잔 얘기를 멋지게 꺼낼 기량도 재주도 없는, 경험이 부족한 남자애들에게는 말없이 몰래 야반도주 하거나, 아니면 "이발하고 올게요"라고 말하고 나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좋은 비다] (p118)

 

그런 데 종사하는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금방 잊어먹기를 잘하는데, 덕분에 항상 새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는 느낌이다.그것도 다른 사람보다 허겁지겁 넘긴다. 그리곤 앞 페이지에 뭐가 적혀 있었는지 새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러면서도 자꾸자꾸 새 페이지로 넘기기만 할 뿐 이전 페이지는 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엉엉 우는 여자는 보여줄 상대가 있기 때문에 울 수 있는 것이다. 키스를 혼자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는 것 역시 보여줄 상대가 있는 여자만이 할 수 있다. 울 상대가 있어도 엉엉 우는 취미를 갖지 못한 나는, 그것도 혼자 사는 나는 이 망신을 혼자 이겨내야만 한다. 엉엉 울 수는 없었다.

 

"도쿄에서 거는 기다."
"어이구, 감사합니다."
"그럼 끊어. '@@@하자!'라고 말해."
"하하하하, 싫어!"
나는 웃었지만 고는 웃지도 않고 이렇게 말했다.
"근심이라곤 쪼매도 없는 사람처럼 웃는군...."
설마 외로워하는 건 아니겠지요?

 

혼자 사노라면 매일, 1년 365일이 피서이자 피한 같은 날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 하찮은 일에서는 그토록 뜻이 잘 맞는 두 사람인데, 핵심적인 일에 있어서는 어찌 그리 완벽하게 어긋나는지.

 

하라 코즈에처럼 여자 드라큘라의 피가 들끓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하라 코즈에 생각이 난 것은 무슨 예시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한반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딸기를 으깨며>, 다나베 세이코

Posted by losenvex
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3:03

 

모든 사람들이 뭘 하는데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들을 생각보다 적을 것 같다. 내겐 책을 읽는 이유도 비슷하고... 뭔가 이유는 책을 읽고 나서야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다만,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아니 요새는 그 이유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게 맞다.

 

1) 다른 삶
소설의 등장인물은 나와 비슷할 수 있어도, 같을 수 없다. (너무 당연한가?) 나와 다르단 것은 내가 알게 될 사람이 한명 더 는다는 의미인지도. 어찌 주인공 뿐이랴, 소설 한 권에는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 만큼의 삶이 있다. 바쁘고 좁은 내 현실에서는 누군가의 삶을 기다리고 들어줄 여유가 없다. 그렇게 나만 생각하기도 바쁜 현실에 치이다보면 배려를 잊는 꼰대가 될 것만 같다. 소설은 그래서 읽는다. 타인의 삶을 알수록 나는 누군가를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2) 죽음
소설을 함축적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구술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혹은 급작스럽게 죽음이 온다. 당사자에게, 주변인에게... 생로병사 모두 비가역적이겠지만, 죽음은 특별하다. 모두에게 공평하다. 할 수 있는 것은 준비 뿐일지도. 소설은 내게 죽음을 소홀히 대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언제나 준비하고 있으라고. 언뜻 들으면 뭔가 위험한 말 같지만, 결국 지금 삶에 대해 충실하면 될 뿐이다. 나는 내일 죽어도 행복하기 위해선 오늘을 후회없이 보내야 한다.

 

3) 시행착오
그럼 어떻게? 간접경험을 통해서.
여러 삶을 살 수는 없지만, 간접 경험을 통해 사전에 재단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물론 솟걸이 일상과 같을 수는 없지만, 어떠한 선택을 했을 때 예상되는 결과를 미리 고민할 수 있게 해준다.

소설의 의미는 그것이다. 

다만, 그 선택에 따른 결과가 내가 주인공이었을 때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소설의 인물처럼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예상경로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떠한 선택을 함에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어떻게 살지 모를 때, 예상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면 당신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살아오고 있다.

Posted by losenvex
잔상[궁금합니까?]2019. 9. 9. 23:00

 

인생의 1,2막이 마무리 된 듯하다.

 

1막에서 다수의 관객을 몰이하고, 보편적인 흥미위주로 보다 많은 사람이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노력했다면, 2막은 실시간 변화하는 모습과 배역의 성격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한 것 같다. 덕분에 지금은 약간 감당할 수 있는 관객들만 남아 다음을 물어보고 있다.

 

3막은 언제 시작할 지 모르겠다. 아마도 특정 관객의 취향에 맞춘 매우 지루하고 평범한 내용이 될 것 같다. 그 대상을 찾기까지 일단 쉬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3막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떠날 것이다. 아마도 기대를 반영하지 않은 내용 때문에 곧 지루해질 테니까.

 

일단 지금은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다음 내용이 어떻게 진행될지 나도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이유로. 3막은 30년간 진행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개연성이 떨어지는지 우려의 말들이 많다. 모르겠다.

 

인터미션은 순조롭게 흐르고 있다. 돈 독이 올랐다지만, 나도 돈돈돈하며 살아도 되겠지라고 뻔뻔하게 투정부릴 뿐이다. 3막을 위한 관객을 찾으면 이 기간이 좀 더 짧아지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

나는 요새 많이 행복한 것 같으면서도 삶은 잔잔한 것 같기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그것이 인생이다. 정말 인생이다. 그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인생은 여러 가지 일에 도움이 된다. 특히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다시 태어나 있다.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살아 있지 않을 것이고, 기계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나의 하루하루는 나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것이다."」
- <딸기를 으깨며>, 다나베 세이코. 브리짓 바르도의 인터뷰를 인용한 것을 다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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