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먹고사니즘]2019. 9. 23. 23:16

 

간혹 일이 잘못되는 경우가 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시도해보는 것은 아는 수준에서의 해결책이다. 축적된 지식과 경험에 기반하기 때문에 적용해보았을 때, 문제 해결까지 가기 가장 용이했고 자원 소모도 적었던 그 방법들 말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내 역량이 얼마냐에 따라 다르지만) 이 선에서 처리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우선적으로는 나보다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대상(어른, 선배, 전문가 등)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내가 아직 몰랐기 때문에 어려웠던 문제들은 여기서 역시 대부분 처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세상이 변하여 그동안 쓴 방법들은 이미 적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는 순간이 올 경우다. 이 경우는 나보다 많이 알고 많이 경험한 이들에게 물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변화한 세상에 적응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물어야 하는 순간인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예전 방식을 고수해봤자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 변화한 세상을 인정하고 새로운 방식을 배워야 할 순간인 것이다. 그걸 무시하고 과거 방식을 고수할 경우, 나는 아마 더 지독하게 시간을 쓰고 노력을 하고 문제가 해결될 거라 믿으면서 쉽게 문제가 해결될 시기를 놓치게 될 것이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답답할 것이고, 아마 비웃는 사람도 많겠지. '나는 틀리지 않았어'란 말을 조심해야 한다.

계속 배워야 한다. 항상 겸손해야 할 것이며, 자만하지 않고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반성을 할 수록 성장할 것이다.

 

- 이전 방식을 놓지 못하는 현상을 지켜보며 반성의 차원에서..

Posted by losenvex
단상[먹고사니즘]2019. 9. 9. 23:13

 

"그만 놀고 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
.
나는 직장인이다. 스타트업 인큐베이션 센터에서 3년 이하의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들과 일하고 있다. 물론 일은 어렵지 않다. 하루 8시간의 근무 시간을 초과하지 않고, 별도의 성과가 강요되지 않는 직장이다. 반대로 성과가 있다고 월급이 오르거나 보너스가 나올일도 없다. 기존의 직장에 비해 여유로운 편이다.
.
시간이 남아 예전 분들께 인사를 드릴 때마다 혼나며 듣는 말이다. "언제까지 쉴 예정이냐?", 일하고 있다고 변명하지만 선배/동기가 주는 부사장/이사/팀장 명함을 받으면 난 쉬고 있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이제 정신차리고 살아야죠"라고 답변드린다.
.
언뜻 초연한 삶을 살게된 연유를 따져보건데, 딴에 공부했던 과학이 원인일까 생각도 한다. 지름 930억 광년의 우주에 먼지만치도 못한 크기의 세상에서 더 잘나면 얼마나 다르고, 138억 년 시간 속에 5000년 기록일 뿐인 역사에 이름을 남겨봐야 무슨 의미가 있냐는 중2병 생각도 한다.
.
그보다 문제는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기엔 소박한 욕심 덕에 이미 행복히 살고 있다. 불안한 미래는 죽음을 당기면 해소될 문제다. 딱히 바랄 게 없는 삶이다. 아직까지는,
.
태어난 김에 살기로 한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고 있다. 우선은 가족부터. 그 이후엔 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기로 한다. 대부분의 나의 이직은 그렇게 이뤄졌다. 필요없는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아마 살아있을 것 같다.
.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말처럼 남들이 사는 대로 사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돈을 벌고, 권력을 얻고, 명예를 추구하고 등등. 적어도 이런 쓸데없는 생각은 안하고 달릴 수 있을 것인다.
.
아니면 생명의 순리대로, 자손을 남기는 DNA 전달체로서의 삶을 사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뭐 이건 시작하면 적어도 20년은 쓸데없는 고민은 안할 것이다. 아, 이건 혼자서는 안되니까 일단 미뤄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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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osenvex
단상[먹고사니즘]2019. 9. 9. 23:12

 

내가 처음 소리꾼이 되어 보겠냐는 권유를 받았을 때, 나는 그런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다.

 

내가 소리를 배우기 시작할 때, 방법을 잘 몰랐기에 다른 소리를 많이 들어야 했고, 어떻게 해야 소리를 잘 할 수 있는지 많은 연습을 해야 했다. 내 소리를 잘하기 위해 다른 이의 소리를 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타인의 소리에 익숙해지기 위해 나는 많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많은 소리를 듣고 처음으로 자그마히 내 소리를 하게 됐을 때, 그 소리에는 가치가 없었다. 초짜 소리꾼의 처지가 다들 비슷했으리라...

 

소리꾼의 소리는 대부분이 싫어하는 편이다. 주로 돈과 권위가 있는 몇몇이 소리를 원하면, 원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도 그 소리를 함께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소리를 할 수록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소리꾼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 나는 소리로 먹고 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소리를 찾는 사람은 드물다. 듣기 좋은 편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간간히 비싼 돈을 내며 소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위안할 따름이다.

 

내 소리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상대방이 내 소리를 듣고 기분이 나아질 리 없기 때문이다. 소리는 어떻게 보면 까다로운 취향이기 때문에 내 소리로 누군가에게 변화를 주기란 더 어려운 일이다.

 

소리를 하며 살다보면 점점 다른 소리를 듣지 않게 된다. 조심할 일이다. 어린 친구들의 소리를 들어야 나도 변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걱정이다.

 

요새는 아주 간간히 내 소리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요청하면 소리를 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오래하면 듣기 좋을리도 없고, 기억에 남기도 힘들다. 요청한 사람이 원하는 만큼만 소리를 하는 것이 소리꾼의 능력일지 모른다. 그 능력이 생겼으면 좋겠다...

 

#뭔소리? #헛소리? #소리앞에'잔'붙이고다시읽기 #그럼소리꾼은뭘까요 #늦은밤에멍멍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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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러고산다]2019. 9. 9. 23:11

 

다음 연휴에 놀러가고는 싶은데 끌리는 곳이 딱히 없다.
아무나 보러갈까 하는데, 어디로 가면 환영해줄까 모르겠다.
어디로 갈까요. 부르면 만나러 가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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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3:11

 

책을 다 읽기 전에 쓰는 후기.

박민규의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추천하는 책이다.
읽으며 몇 번 눈물을 흘리고, 소리지르고 싶은 가슴을 달래고 있다. 동시에 내가 왜라는 생각과 내가 그래도 될까란 생각이 교차하고,

아직 소설을 다 읽지 못했음에도 확신을 가진다.
'난 이 소설을 몇 번이고 다시 읽을 것이다.'

질문하는 책이다. 답을 열심히 찾아야겠다.

Posted by losenvex
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3:10

 

어쩌면 여성들은 그에게서 경쟁을 포기한 자의 나태한 자기 변명 같은 걸 감지했을 수도 있었다. 뭐든 잘 먹고 공격적인 남자, 오래 사는 것보다는 짧고 굵게 살겠다는 남자들에게 매료되는 여자가 아무래도 더 많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
기영은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슬픈데,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어린 모습을 간직한 채로 늙어가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늙어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년은 늙어 늙은 소년이 되고 소녀도 늙어 늙은 소녀가 된다.
...
"죽고 사는 확률은 어차피 반반이잖아. 죽으면 끝이니까. 확률은 무의미한 거야. 러시안 룰렛의 확률은 산술적으로 육분의 일이지. 그렇지만 방아쇠를 한 번 당길때마다 언제나 확률은 반반인 거야. 살거나 죽거나. 안 그래?"

<빛의 제국>, 김영하

Posted by losenvex
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3:09

 

새해 벽두부터 무슨 일인지, 영화와 뮤지컬을 보며 울었다. 간만에 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많이,
.
소설이든, 영화든, 공연이든. 하나의 삶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해되기 마련이고, 때문에 하나의 삶을 알게되면 그 삶을 살았던 사람 뿐만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들의 삶의 편린을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적어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게 된다.
.
몇 번을 봤던 영화지만, 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계속 읽히는 영화고, 뮤지컬이다. 아직도 원작을 읽지 못해서 아쉬울 따름이다. 축적된 상호 습관의 결과만을 축약해 한 편을 구성했기에, 나이가 들수록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이번에는 마츠코 외 인물들의 과거를 반추하며 감상했기 때문에 더 입체적인 내용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만화식 연출은 아마도 관객을 위한 배려다 싶을 정도로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
.
나는 마츠코를 응원한다. 소용없겠지만, 주변엔 참 많은 마츠코들이 있는데, 내가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하다. 내 삶이 마츠코를 닮진 않았다. (그게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
영화와 뮤지컬 모두 추천한다. 화려한 색을 즐기지 않는다면 좀 꺼릴수도 있겠지만. 영화의 발랄함은 관객을 더 아프게 만들고, 뮤지컬의 배경 효과는 대사 하나하나를 귀에 읽어줄 것이다.
.
뮤지컬의 마츠코는 뭔가 한국적이다. 2막부터 신파가 강조된 부분이 조금 아쉽다. 좀 더 자립적인 영화의 마츠코가 더 맘에 든다. 뮤지컬에서 조금씩 변경된 설정은 이해를 돕기에 적절했다고 판단한다.
.
위로해줄 여력이 있는 분들께, 추천한다.

Posted by losenvex
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3:09

 

"쉽고/등장인물 이름 외우느라 머리 안 복잡하고 / 힐링되고 / 가벼운 책"을 추천 해달라는 카톡을 받은지 벌써 2주가 지났다. 일한다는 핑계로 이제야 글을 쓰지만, 지난 연휴동안 다른 책을 읽느라 소홀했다. 최근 읽은 책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
먼저 답을 주자면, 일본 작가들의 소설이 아마 원하는 답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걸>, <인더풀>, <공중그네>가 아마 힐링되고 가벼운 책이면서 곱씹기 좋다. 모리미 토미히코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도 괜찮다.

 

위 책들은 알라딘 같은 중고서점에 가면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일본 이름이 좀 외우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볍게 읽기 좋다. 혹은 로열드 달이나 국내 작가 중, 성석제의 소설이 가볍게 읽기 좋다. 가벼운 책은 아닐지도,
.
조금 더 천천히 읽을 시간이 난다면 국내 작가 윤성희 씨나,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을 추천한다.
.
답이 늦었다..

Posted by losenvex
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3:08

 

소설을 읽으면,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 내가 겪지도 않은 일들, 즐거움, 고통과 무력감을 만지게 된다.

나를 질질 끌고가는 이 끈은 대체 뭔지...

지금은 일단,

Posted by losenvex
일상[이러고산다]2019. 9. 9. 23:08

 

 

잠에 못들어 나간 길에 조용히 눈이 내리고 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눈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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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3:07

 

좋아해서 거의 전집을 사들였던 작가.
삶의 고발형 소설,
이제는 모두가 잊어버린 폭주족 십대, 가출 청소년의 이야기.
화자의 나이가 어린데, 작가의 표현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로 젊은 나이에 나름의 철학을 만든 것인지, 가끔 묵직한 대사가 있다.


중2병을 벗어나지 못한 어린 태도와 애어른에 도달한 대사와의 간극에 전반적으로 제이의 모습은 위태롭다.

[우리 같은 애들도 사람들은 전혀 못 봐요. 투명인간처럼 쓱, 지나가버리는 거죠. 좀 거북하고 불편하고 뭐 그럴 뿐이겠죠. 정 심하면 도려내면 되고.]

버려져 야생의 삶을 살게된 고양이들처럼, 섹스와 폭력의 삶을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2012년 作)

<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
문득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 내 손에 들려 있던 그 핏덩이는 어디로 갔을까? 앰뷸런스에서도 본 기억이 없았다. 그런데 그것, 그것을 뭐라고 하지, 그 물컹하고 축축한, 요란하게 소리내어 우는 작은 육신을? 정리되지 못한 어휘들이 그녀의 멍한 머리속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녔다. 하나의 단어가 수면 가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기, 아기 어딨어요?"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는 그녀를 젊은 인턴이 찍어눌렀다.
.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세상 그 누구도 여섯 살의 내가 경험한 원초적 흥분을 재현해줄 수 없다는 것을. 지나간 기억은 외려 생생해지기만 하는데, 새로운 경험은 그에 터무니없이 미달한다는 것을 거듭하여 깨닫게 될 때, 인생은 시시해진다. 나는 너무 일찍 그것을 알아버렸다.
.
"언제까지 이럴 거야?"
"잡을 때까지."
제이는 완강했다. 볼은 푹 패었고 내미는 팔에는 뼈만 남아 있었다. 반지하방의 문을 열고 내려갈 때마다 차갑게 굳은 제이의 시체를 발견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냥 적고보니 그저 평범한 크리스마스카드가 되어버렸다. 잘 있지, 나도 잘 있다. 거기는 좀 어떠냐? 메리 크리스마스다. 대충 이랬던 것 같은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제이로서는 누구 놀리나 싶은 기분이 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
예쁜 애가 하나도 없으면 여자애들은 가출을 실패하기 십상이다. 가출한 첫날, 늦어도 둘째 날까지는 지붕이 있는 잠자리를 구해야 한다. 잠자리를 제공해줄 남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선 예쁜 여자애가 필수다. 하나라도 있어야 거리의 가출시장에서 흥행이 되고 잠자리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다. 이들은 망설이는 예쁜이를 어르고 겁주어 결국은 끌어들였다.
.
그러는 그를 엎어놓고 모두 모여 등을 손바닥으로 두들겨대며 노래를 불렀다. 왜 태어났니, 씨발아, 왜 태어났니, 씨발아, 이 좆같은 세상에 왜 태어났니.
"언제까지 이렇게 사는 거야?"
여자애들이 돈을 벌러 나간 어느 저녁, 멍하니 앉아 TV를 보는 후드티에게 제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다음 날 아침 제이가 모노륨 바닥에 묻은 핏자국, 가해의 흔적을 닦을 때, 후드티가 지나가면서 말했다.
"찬물로 해. 피는 그렇게 닦는 거야."
.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제이는 거리에서 열일곱이 되었다.
.
"나는 단지 질문을 하고 있는 것뿐이야. 지난 일 년간 나는 나 자신한테 묻고 또 물었거든. 그게 어느새 버릇이 됐나봐. 내 고통의 이유는 무엇인가? 타인의 고통은 왜 나의 고통이 되는가? 신이 내게 이런 운명을 준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죽었어야 할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그것은 무슨 뜻일까? 이런 질문들을 하는 거야. 나는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돌아다녀. 조용한 곳을 찾아 책을 읽고 생각을 해. 그런데도 늘 시간이 부족해."
.
"뛰지 마. 네가 이 우주의 중심이야."
.
제이의 독서는 아파트 재활용품 처리장에 나온 책들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므로 계통도 체계도 없었다. 자기계발서에서 건진 듯한 잠언이 종교적 교훈과 뒤섞였고 싸구려 대중소설의 잔뜩 힘을 준 비장한 문체가 로맨스의 극적인 구성으로 스며들었다. () 그가 내 삶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자 그의 말이 얼마나 텅 비어 있는지 문득 깨닫게 되었다.
.
제이는 바다의 기이함을 단숨에 파악했다. 바다, 그것은 거대한 없음이었다. 제이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와 존재하지 않게 될 미래를 떠올렸다. 그 순간 제이가 느낀 감정은 공포에 가까웠다. 시작도 끈도 없는 우주의 시간이 바다라는 형태를 빌려 나타난 것만 같았다.
.
그러나 밤의 세계에서 경찰은 호구였다. 순순히 딱지를 받아들던 낮의 아이들은 밤이 되면 피에 굶주린 좀비처럼 경찰에게 달려들었다.
.
언제부터 제이의 죽음을 상상하기 시작했을까. 아니, 이 질문은 비겁하다. 나는 언젠가부터 명백히 제이의 죽음을 상상해, 아니 바라왔던 것이다. 여러 번에 걸쳐 매우 구체적으로 나는 제이가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그려왔다. 그의 부재가 가져다줄 달콤한 비애의 맛까지도 어느 정도 예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더 나아가 나는 제이의 죽음에 가장 직접적인 관련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도 상정해보았다. 다시 말해 나는 살인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이다.
.
그들은 그저 밤새 달렸다. 굼뜬 경찰을 피해 게릴라처럼 숨바꼭질을 벌였다. 정치적 비전이나 구호도 없었다. 요컨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매우 단순했다. 한밤의 퍼레이드. 그저 그뿐이었다.
.
"오늘 분위기상 천 대는 모이지 않을까?"
가스통의 예상이었다.
"와 씨바, 존나 떨린다."
흥분을 못 이겨 앞으로 치고 나가는 짝눈을 경광봉을 든 제이가 앞커버로 보냈다.
.
[이놈은 위험하다.]
.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뭐니?"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예요."
"제이가 했던 말이지? 그런게 그게 무슨 뜻이야?"
"뜻은 모르겠어요. 그치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쩐지 제이가 저를 용서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
"무슨 일이야? 이 밤중에."
"아무 일도 없어."
"겪어서 안 될 일은 아예 격지 않는 게 좋다."
"뜬금없이 그게 뭔 소리야?"
"뭔 일인지 모르겠다만, 할까 말까 싶은 일은 그냥 안 하는 게 좋아."
"아무 일도 없대도 그러네. 제발 무슨 감 있는 척 좀 하지 마. 엄마는 그런 감 없어."
"있어."
.
"아줌마, 죄송해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돼요. 제가 다 알아서 해요."
제가 다 알아서 해요. 아직 솜털이 보송한 소년의 이 말에 갑자기 맥이 탁 풀려버린다. 윤리는 둑과 같다. 어느 정도까지는 자아를 지켜주지만 한번 터지면 격렬한 방류가 뒤따른다.
.
"내일 죽는다면 오늘은 오토바이를 탈 거예요."
목란이 씩 웃으며 말했다.
.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현실이 된대요"
제이가 담당하게 말했다.

Posted by losenvex
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3:06

 

 

Healing time in Winter.
"Some people are worth melting for"

 

Posted by losenvex
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3:04

 

그렇다면 처음부터 척했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고 고를 정말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다. 고도 그것만은 틀림없이 인정해주리라 생각하지만. 아무튼 그 인간은 돈이 너무 많고 그것에 꽁꽁 묶여서, 평판과 음모가 들끓는 그 집안과 어울리는 것은 나를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서른다섯의 내 몸, 빛이 나는 서른다섯, 너무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위스키를 마신 것처럼 나르시시즘을 마시고 만취해버린 건지도 모르지만, 고와 함께 있을 때는 그때가 인생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그 이전인 스물한두 살 때도 그랬지만- 지금 나는 지금이 내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혼자 사는 것이 쓸쓸해서 혼잣말이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즐거워서 혼잣말이 나온다.


혹은 혼잣말을 할 수 있는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 혼자 산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하라 코즈에는 둘이 살면 꽤나 상냥한 여자일 것이 틀림없다. 너무 오래 깊이 빠져 있으면 필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리란 걸, 너무 오래 머물다 결국 발을 뺄 수 없게 되면 큰일이란 걸 그 남자애도 알고 아마 두려워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싸울 거리도 없고, 헤어지잔 얘기를 멋지게 꺼낼 기량도 재주도 없는, 경험이 부족한 남자애들에게는 말없이 몰래 야반도주 하거나, 아니면 "이발하고 올게요"라고 말하고 나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좋은 비다] (p118)

 

그런 데 종사하는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금방 잊어먹기를 잘하는데, 덕분에 항상 새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는 느낌이다.그것도 다른 사람보다 허겁지겁 넘긴다. 그리곤 앞 페이지에 뭐가 적혀 있었는지 새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러면서도 자꾸자꾸 새 페이지로 넘기기만 할 뿐 이전 페이지는 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엉엉 우는 여자는 보여줄 상대가 있기 때문에 울 수 있는 것이다. 키스를 혼자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는 것 역시 보여줄 상대가 있는 여자만이 할 수 있다. 울 상대가 있어도 엉엉 우는 취미를 갖지 못한 나는, 그것도 혼자 사는 나는 이 망신을 혼자 이겨내야만 한다. 엉엉 울 수는 없었다.

 

"도쿄에서 거는 기다."
"어이구, 감사합니다."
"그럼 끊어. '@@@하자!'라고 말해."
"하하하하, 싫어!"
나는 웃었지만 고는 웃지도 않고 이렇게 말했다.
"근심이라곤 쪼매도 없는 사람처럼 웃는군...."
설마 외로워하는 건 아니겠지요?

 

혼자 사노라면 매일, 1년 365일이 피서이자 피한 같은 날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 하찮은 일에서는 그토록 뜻이 잘 맞는 두 사람인데, 핵심적인 일에 있어서는 어찌 그리 완벽하게 어긋나는지.

 

하라 코즈에처럼 여자 드라큘라의 피가 들끓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하라 코즈에 생각이 난 것은 무슨 예시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한반중에 전화가 걸려왔다.

<딸기를 으깨며>, 다나베 세이코

Posted by losenvex
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3:03

 

모든 사람들이 뭘 하는데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들을 생각보다 적을 것 같다. 내겐 책을 읽는 이유도 비슷하고... 뭔가 이유는 책을 읽고 나서야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다만,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아니 요새는 그 이유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게 맞다.

 

1) 다른 삶
소설의 등장인물은 나와 비슷할 수 있어도, 같을 수 없다. (너무 당연한가?) 나와 다르단 것은 내가 알게 될 사람이 한명 더 는다는 의미인지도. 어찌 주인공 뿐이랴, 소설 한 권에는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 만큼의 삶이 있다. 바쁘고 좁은 내 현실에서는 누군가의 삶을 기다리고 들어줄 여유가 없다. 그렇게 나만 생각하기도 바쁜 현실에 치이다보면 배려를 잊는 꼰대가 될 것만 같다. 소설은 그래서 읽는다. 타인의 삶을 알수록 나는 누군가를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2) 죽음
소설을 함축적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구술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혹은 급작스럽게 죽음이 온다. 당사자에게, 주변인에게... 생로병사 모두 비가역적이겠지만, 죽음은 특별하다. 모두에게 공평하다. 할 수 있는 것은 준비 뿐일지도. 소설은 내게 죽음을 소홀히 대하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언제나 준비하고 있으라고. 언뜻 들으면 뭔가 위험한 말 같지만, 결국 지금 삶에 대해 충실하면 될 뿐이다. 나는 내일 죽어도 행복하기 위해선 오늘을 후회없이 보내야 한다.

 

3) 시행착오
그럼 어떻게? 간접경험을 통해서.
여러 삶을 살 수는 없지만, 간접 경험을 통해 사전에 재단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물론 솟걸이 일상과 같을 수는 없지만, 어떠한 선택을 했을 때 예상되는 결과를 미리 고민할 수 있게 해준다.

소설의 의미는 그것이다. 

다만, 그 선택에 따른 결과가 내가 주인공이었을 때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소설의 인물처럼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예상경로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떠한 선택을 함에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어떻게 살지 모를 때, 예상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면 당신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살아오고 있다.

Posted by losenvex
잔상[궁금합니까?]2019. 9. 9. 23:00

 

인생의 1,2막이 마무리 된 듯하다.

 

1막에서 다수의 관객을 몰이하고, 보편적인 흥미위주로 보다 많은 사람이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노력했다면, 2막은 실시간 변화하는 모습과 배역의 성격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한 것 같다. 덕분에 지금은 약간 감당할 수 있는 관객들만 남아 다음을 물어보고 있다.

 

3막은 언제 시작할 지 모르겠다. 아마도 특정 관객의 취향에 맞춘 매우 지루하고 평범한 내용이 될 것 같다. 그 대상을 찾기까지 일단 쉬는 시간을 갖기로 하고... 3막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떠날 것이다. 아마도 기대를 반영하지 않은 내용 때문에 곧 지루해질 테니까.

 

일단 지금은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다음 내용이 어떻게 진행될지 나도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이유로. 3막은 30년간 진행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개연성이 떨어지는지 우려의 말들이 많다. 모르겠다.

 

인터미션은 순조롭게 흐르고 있다. 돈 독이 올랐다지만, 나도 돈돈돈하며 살아도 되겠지라고 뻔뻔하게 투정부릴 뿐이다. 3막을 위한 관객을 찾으면 이 기간이 좀 더 짧아지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

나는 요새 많이 행복한 것 같으면서도 삶은 잔잔한 것 같기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그것이 인생이다. 정말 인생이다. 그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인생은 여러 가지 일에 도움이 된다. 특히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다시 태어나 있다.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살아 있지 않을 것이고, 기계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나의 하루하루는 나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것이다."」
- <딸기를 으깨며>, 다나베 세이코. 브리짓 바르도의 인터뷰를 인용한 것을 다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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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2:59

 

침잠하고자 소설을 읽는다.

 

너무 늦었지만, 김경욱 작가의 이상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싸늘하고도 무거운 적막이 병실을 짓눌렀다. 간호사들은 자기들끼리 은밀한 눈짓을 주고받았다. 다 끝났다고. 물 건너갔다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여자뿐이었다. 의사가 마사지기를 맥없이 내려놓을 때도, 굳은 얼굴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볼 때도, 사무적인 말투로 사망선언을 할 때조차도.
여자가 죽음을 실감한 것은 아버지의 미소를 본 순간이었다."
- <천국의 문>, 김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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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2:59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서 시간 낭비란 없다.
ㅡ <에밀>, 장 자크 루소

칸트 아저씨가 왜 정신 못차렸는지 알 것 같기도...

이제라도 읽어 다행이라는 생각.

Posted by losenvex
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2:57

 

주말마다 밤을 새워 책을 읽는다.
디스토피아 문학을 읽으며,
내 삶은 어디까지 무너지고 있는가 확인한다.

버나드의 삶이 특히 와닿는다.

ㅡ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Posted by losenvex
감상[읽고적는글]2019. 9. 9. 22:56

 

박별 (Bradley Park)이 사줘서 묵혀두던 책인데, 이제야 끝까지 읽음. 혹시나 읽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미리 얘기해두자면 읽어서 재미있을 만한 사람은 뭔가 커리어의 고점을 찍거나, 고점을 찍으면 뭘 해야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함. 반대로 얘기하면 연차낮은 직장인, 취준생, 백수, 학생 등등에게는 그닥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의 책. (그래서 나도 별 공감이 안되는 것 같기도)

책이 별로라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뭔가를 이룬 사람들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글 느낌이 들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상황과 현실이 반영이 잘 안된 것 같다. (개인적 판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훈이 있었기에 일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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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 사랑하면서도 거리두기'다. 일에 대한 필요한 거리는 연인 사이에 필요한 거리와 다르지 않다. 관계에 대해 흔히들 이렇게 얘기한다. "혼자서도 잘살 수 있는 사람이 둘이서도 잘살 수 있다"고. 그 사람이 아니면 죽을 것 같고, 그가 아니면 내 삶이 의미가 없고, 상대의 인정이 내 존재 가치를 규정한다고 믿어버린다면 그 연애는 결코 건강하게 오래 지속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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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말은 현실에서 너무 쉽게 허망해진다. "좋아서 하는 사람은 못당한다"."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말이 경구처럼 떠받들여지는 시대다. 동시에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두는 것이 좋다"는 말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실은 아마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문제는 대체 그 '좋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냐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대개가 그놈의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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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두어 개를 거치고 경력이 좀 붙자 나는 유들유들함의 가면을 집어 들었다. 빠득빠득 설득해서 원하는 것을 얻든지, 머리를 슬쩍 숙이고 웃음 한 번 흘려서 원하는 것을 얻든지,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우친 덕이었다. 아니, 오히려 후자 쪽이 훨씬 나은지도 몰랐다. 논쟁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면 상대의 마음엔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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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무라 야스유키는 이런 '평화공생지향' 젊은이들이 1990년대 후반 대거 시골로 이주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시골에서 그 대단하지도 않은 기대를 채울 만큼의 돈벌이조차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도시로 돌아와 울며 겨자 먹기로 경쟁의 대열에 다시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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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더 많은 '쓸데없는 일', 잉여짓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돈과 시장을 경유하지 않고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 쓸데없는 일이 늘 재미있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 그 쓸데없는 일도 역시 우리에게 좌절을 안기기도 하고 피로함을 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규정한 일에서만 우리는 그러한 좌절과 피로를 즐거움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일하는 자-됨'의 윤리란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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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요구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되,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스스로 변화를 집어넣으라는 것이다. 똑같은 일의 패턴을 따르는 대신 그때그때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보거나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해보는 식이다. 이렇게 현실의 일 위에 또 다른 층위를 스스로 창조해낼 때, 그리고 그 층위에 몰입할 수 있을 때 일은 몸값이라는 현실의 성과 기준과는 상관없이 작동하는 하나의 놀이가 된다.
놀이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제3자의 승인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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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마운틴에서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나 '원래 그런 것', '위에서 결정된 것' 같은 말 앞에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출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의 총구가 어디를 겨눌지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면 '시키는 대로 했다'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
그러나 현실은 정확히 그 반대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명함을 주고받는 것이 어른들의 교제법이다. 명함을 내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어디서 무슨일을 하는지 둘러서라도 집요하게 물을 것이다. 그 답을 알고나서야 그들은 머리속 지도에 당신을 위치시키고 마음을 놓는다.
.
(<생활의 달인>) 성실한 노력을 쏟아붇고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만은 장인답지만 그들이 놓인 조건은 그렇지 못하다. 달인들이 일하는 곳은 그들 자신의 공방이 아니라 기업이 운영하는 공장이나 대형 상업시설이다. 그들의 작업물은 철저히 익명의 것으로, 기업의 상표가 분을 뿐이다.
그들의 일은 자기 자신의 리듬이 아니라 기계의 리듬 또는 고객의 리듬에 따라 움직인다.
.
(제니퍼소프트 인터뷰 발췌)
"신입 사원을 모시는 게 아니라 실제 능력이 있는 사람 아니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언어는 배우면 되고, 기술은 익히면 되고, 경험은 쌓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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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려면 등가성을 따지지 않고 내 존재의 의미를 발견해주는 일터에서 일해야 한다. 내 존재 자체를 일의 규정에 포함해주는 일터가 필요하다. 그런 일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없다면 우리 스스로 '무리'를 이루어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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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일이란 대개 먹고살기 위한 돈벌이다. 일은 괴로운 것이 자연스러우며, 그래야 우리에게는 대가를 받을 자격이 생겨난다. 우치다 타츠루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통찰을 내놓는다. "사냥꾼인 아버지가 사냥한 짐승을 들고 집으로 들어오듯, 농부인 아버지가 곡식과 채소를 집으로 가지고 오듯, 현대의 샐러리맨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언짢은 얼굴을 가지고 돌아옴으로써" 가족을 위한 노고와 희생을 과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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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해도 되는데 같이할 사람들을 구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아주 단순한 답이 돌아온다. "혼자 못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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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다르게 살고자 한다면 결국 더 유능해야 한다. 이것이 흔한 자기 계발서의 주문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다만 유능의 준거가 세상의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유능해야 할 이유가 온전히 나의 것이어야 한다. '남들만큼'이 아니라 '나름대로' 먹고살며, 시장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면서 일해야 한다.
.
내리막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 오늘이 어디서 왔건, 그것을 뚫고 지나야 하는 것은 오롯이 '나' 그리고 '당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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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인 목표를 계획하고자 하는 사람, 일을 잘해 잘하는 일을 해왔는데 이제는 재밌는 일이 뭘까 고민하는 사람, 베테랑이라고 하기엔 확신이 들지 않는 말년 병장(Sergeant)에게 이 책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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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osenvex
단상[먹고사니즘]2019. 9. 9. 22:55

 

[묻기 전에 먼저 답 주지 않기]

 

최근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꼰대를 넘어 '개저씨'가 되고 있음을 깨닫고 간만에 반성 뻘글...

 

뭐 요새 이런저런 개저씨 구분 테스트로 있지만,
일상 대화에서 느껴지는 문제점이 우려 수준을 넘은 것 같다.

 

문제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나열한다면,
1. 단언한다.
2. 내용을 다 듣기 전에 판단하고 답한다.
3. 한 주제로 오래 대화하지 않는다.
4. 대화의 깊이가 얕아진다.
5. 상대의 현실을 고려하기 보다, 일반적인 상황을 가정한다.
6. 대화가 끝나고 무슨 얘기를 해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7. 내가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적다.
8. 집에 돌아오면 반성 후, 사과했어야 하는 말들이 주루륵 떠오른다.
... 많기도 하군,

 

뭐 이래저래 내가 지친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하는 부분도 있지만, 어쨌거나 나와 상대방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자꾸 들곤 한다. 그간 내 잔소리를 들어야 했던 분들께 사죄를...

 

뭐 어쨌거나 반성은 하고 앞으로 나아지려면 뭘 해야하나 잠시 고민을 했는데, 결론은 하나인듯,

"경청"

 

뭔 책을 읽던 잘 들으라 하지만 이게 쉬운 일은 아닌 갑다.
알아도 습관화하기에는 또 시간이 들 것 같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생각해보니 결국은 먼저 답하지 않는 게 제일 효과적일 것 같다. 물어보기 전에 답을 하니 잔소리만 는다. 나와 너는 다르다. 내 상황에 맞는 대답이 상대에 해결이 될 수 없다. 아니 그 전에 내가 왜 답을 줘야한다고 생각했을까. 오만일듯... 또다시 '겸손'해야 할 시기.

 

썰이 길다.

 

걍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도움 요청 하나 하자면,
제가 떠들기 시작하면 좀 말려주세요.
예를 들면, 우수 동생들이 가끔 제게 하듯이,
"형, 좀 닥쳐봐"
가 제일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추가로,
"형 좀 듣고, 떠들어." 도 좋습니다.

 

제가 그렇게 사나운 편은 아닙니다. (물지 않아요.) 저렇게 말하면 가만히 깨갱합니다. 일단, 이미 제 꼰대짓에 질린 분들께는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혹시나 저를 만나게 되면 도움을 좀 부탁드립니다.

 

요새 바쁘다는 핑계로 반성을 안하고 있어서...

뇌가 좀 말랑거렸으면 좋겠는데, 듣는 능력이 자꾸 떨어지네요.

다들 남은 주말 잘 보내시길~

Posted by losenvex